인도 뉴델리
부다가야에서 출발하신 성하께서는 어제 델리에 도착하셨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차투르베디 기념관 개관 기념 강연을 위해 인도 행정 연구원에 도착하셨습니다. 故 T.N. 차투르베디 지사(1928~2020)는 인도 행정부의 주요 인사로서, 은퇴 후에는 인도 감사원에서 일하였고 카르나타카 주지사도 지내신 분입니다. 차투르베디 가문의 일원이자 행정 연구원의 트리파티 원장, 네루 기념 박물관 및 미쉬라 도서관의 부소장, 그리고 여러 인사들이 성하를 맞이하여 차투르베디 기념관으로 안내하였습니다.
성하께서 참여하신 개관 기념 점등식이 끝나고 그리파티 원장 등 차투르베디 가문의 대표들이 성하를 환영하며 강연을 부탁드렸습니다.
“나는 티베트에서 살던 어린 시절부터 고대 인도의 사상을 배웠습니다. 이후 난민이 되어 이 나라에 왔고, 인도 정부의 손님 자격으로 내 생애 대부분을 이곳에서 지냈습니다. 이 시기에 나는 고대 인도의 정신인 ‘카루나(자비심)’와 ‘아힘사(비폭력)’를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인류는 이 두 가지 정신을 실천해야 합니다.
비록 간디 선생을 뵐 수는 없었지만 네루 초대 수상, 인디라 간디 수상, 랄 바하두르 샤스트리 수상(2대 인도 수상)을 만날 수 있었고 그분들과 나눈 대화를 통해 존경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인도는 민주 국가이며 수많은 종교가 세속적인 규범 아래 함께 공존하고 있는 놀라운 나라입니다.
‘까루나’와 ‘아힘사’ 정신은 내가 일생을 바쳐 널리 알리고자 헌신하고 있으며, 평범한 한 인간으로서도 존경하는 철학입니다. 우리는 모두 똑 같은 인간입니다.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태어나고 어머니의 자비로운 보살핌으로 생존하게 됩니다. 인간의 본성은 자비롭습니다. 우리는 사회적 동물입니다. 우리의 생존은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의존하며, 따라서 우리도 공동체를 도와야 합니다. 크게 보면 현재를 사는 지구상의 80억 인구 모두가 함께 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자비심(까루나)’와 ‘아힘사(비폭력)’를 말할 때 우리는 서로의 이질성 보다는 동질성에 주목합니다. 동질성에 주목할 때 ‘카루나’, ‘아힘사’가 진정한 의미를 갖게 됩니다. 여러분이 마음 속에 ‘까루나’를 지니면 내면의 힘과 자신감이 따라옵니다.
다른 사람을 ‘우리’와 ‘그들’로 구분 짓는 것은 고루한 일입니다. 오히려 ‘까루나’와 ‘아힘사’를 갖고 대해야 합니다. 자비로운 마음인 ‘까루나’를 고양하게 되면 공포, 분노, 미움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습니다. 숙면은 물론이고 건강을 즐길 수 있을 것입니다.
내 삶은 평탄하지 않았지만 그 같은 고난이 오히려 ‘까루나’, ‘아힘사’와 같은 깊은 내면의 가치를 실천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모든 인간은 똑같으며 함께 어울려 살아가야 하기에 국적, 이념, 종교를 따지는 협소한 생각에 집착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나는 돌아가신 차투르베디 지사님을 평생 ‘까루나’와 ‘아힘사’를 실천하신 분으로 기억합니다. 내가 지금 87세이지만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보다 젊게 보입니다. 하지만 보기 좋은 외모도 ‘까루나’라는 내면의 아름다움에 비하면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청중의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성하께서는 현대 교육이 물질적인 경향을 보이는 것은 주로 서구의 영향 때문인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진정으로 따뜻한 마음을 갖도록 가르치려면 지금의 교육에 고대 인도의 철학이 지향하는 내면의 가치를 결합해야 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물질문명의 발전은 많은 혜택을 주기는 하지만 그것이 우리 내면의 평화와 의지를 해치는 결과를 낳아서는 안 됩니다.”
“이 나라, 저 나라를 따지지 않고 인류 전체에 대해 생각해야 할 시점이 왔습니다. 기후 변화의 위기에 직면한 21세기에는 한 국가 만을 생각할 여유가 없습니다. 다 함께 어울려 사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지구 온난화의 심각성은 우리가 지구의 자연 생태계를 보전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묻고 있습니다.
자연을 보호하려면 우리 자신이 자연의 일부이며 우리의 생존이 자연에 달려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합니다.”
성하께서는 화가 나는 경우가 없으신지를 묻는 다소 도발적인 질문이 있었습니다. 성하께서는 자비심의 실천을 핵심으로 하는 샨티데바 스님의 논서인 『보살에 이르는 길(입보리행론)』을 공부하는 당신께서도 가끔씩 화가 나는 경우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하께서는 ‘까루나(자비심)’를 보이는 것이 남에게 놀림을 당하거나 이용 당하게 되는 유약함을 드러내는 것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공동체를 돕는 일이 자신을 돕는 길입니다. 티베트와 히말라야 지역에 사는 분들이 특히 고마운 점은 이들이 대체로 따뜻한 마음으로 이웃을 돕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인공 지능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성하께서는 아무리 기계가 정교하더라도 인간의 마음을 모방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답변하셨습니다.
성하께서 표상으로 삼는 인물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인도의 고승 용수 보살(나가르주나)을 존경한다고 대답하셨습니다. “용수 보살님은 오래전에 사셨던 분이지만 명확하게 생각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분은 부처님 가르침의 진수를 제자들에게 전하셨습니다. ‘순금의 진위를 가리기 위해 태워 보고, 잘라 보고, 문질러 보듯이, 너희들도 내 말을 단순한 존경심으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직접 시험해 보라.’ 나는 모든 종교를 존경합니다만 불법이 남다른 점은 스스로 생각하는 관조를(사유를?) 권장한다는 것입니다.”
강연의 진행자인 행정 연구원의 란잔 교무 과장이 성하께서 자비심이 내면의 힘과 평화를 가져온다고 지적하신 점에 대해 감사의 인사를 했습니다. 故 T.N. 차투르베디 지사의 둘째 아들인 아바닌드라 차투르베디 씨가 성하께 기념품을 증정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미쉬라 박사가 감사의 뜻을 전했습니다. “자비심(까루나)에 대한 성하의 말씀을 듣게 되어 영광이었습니다. 참석해 주신 모든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