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동서양을 넘나들며 잘 사는 나라와 가난한 나라를 방문했습니다. 즐거움을 한껏 누리며 사는 사람들과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과학 기술의 발전이란 일차원적 개선과 수치상 증량에 불과해 보였습니다. 종종 개발은 보다 많은 도시에 저택을 더 많이 짓는 것, 그 이상을 의미하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 결과, 우리 삶의 근간이 되는 생태계의 균형이 크게 깨지고 있습니다.
한편, 과거 티베트 사람들은 생태계가 파괴되지 않은, 자연 환경이 오염되지 않은 환경에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티베트를 포함해 전 세계 곳곳에서 생태계가 급속하게 훼손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보편적인 책임감을 갖고 공동으로 대처하지 않으면 지금껏 우리 삶을 지탱해 온 민감한 생태계가 점차 파괴되어 하나뿐인 우리의 집, 지구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황폐해질 것입니다.
아래 글은 이와 같은 나의 깊은 우려를 표명하며 모든 관계자들에게 환경을 보존하고, 훼손된 자연을 개선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을 촉구하기 위해 작성되었습니다.
진리를 터득한 여래시여,
무우수 나무 아래에서 탄생한
비할 데 없이 뛰어난 존재시여!
우주와 살아 있는 생명체,
윤회와 열반,
생물과 무생물이
대자연에서 서로 의존한다는 걸 아시고
자비로운 마음으로 세상을 가르친 분이여!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오, 구세주시여!
모든 부처님 가운데 자비의 화신인 보살이시여,
당신께 청하옵건대
우리의 마음이 여물어서
착각하지 않고 실상을 볼 수 있도록 하소서.
우리에겐 ‘나’라는 고집이
마음에 뿌리 깊이 박혀 있습니다.
우리는 태초부터 환경을 오염시키고 더럽혔습니다.
이는 살아 있는 자들이 함께 지은 업보입니다.
호수와 연못은 더 이상 맑고 청량하지 않습니다.
대기는 오염되었습니다.
불타는 창공의 지붕이 터져 산산이 흩어졌습니다.
중생은 이름 모를 질병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눈부신 영광을 자랑하던 만년설의 설산은
고개를 숙이고, 눈이 녹아내려 물이 되어
장엄한 대양은 영겁의 평형을 잃고
섬들을 가라앉습니다.
끝이 없는 불과 물과 바람의 위험,
숨막히는 무더위에 울창한 숲은 말라 가고
전례 없는 폭풍이 세상을 덮쳐
바다는 소금기를 잃어 갑니다.
사람들은 돈이 부족하지 않으나
깨끗한 공기를 마실 여유는 없습니다.
비와 개울은 더 이상 깨끗하지 않으며
자정력을 잃은 무력한 액체에 불과할 뿐입니다.
인간, 수중과 육상에 사는 무수한 생명체가
고약한 병에 걸려 육체의 고통이라는 멍에를 쓰고 있습니다.
나태, 무감각, 무지로 인해 그들의 마음은 무디어졌습니다.
심신의 환희는 아주, 아주 멀어져 버렸습니다.
우리 어머니인 아름다운 지구의 품을
우리는 불필요하게 더럽혔고
근시안적인 욕심을 채우기 위해 어머니인 대지에서 나무를 베어 냈으며
비옥한 지구를 메마른 사막으로 바꿔 놓았습니다.
경전에서 말하는 인간 내면의 본성과
외부 환경의 상호 의존성은
의학과 천문학에서 나타나고
지금 우리의 경험에서도 입증되고 있습니다.
생명체의 고향인 지구는
생물이건 무생물이건 모두에게 평등하고 공평합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위대한 지구의 증인이 되어
진실한 목소리로 말씀합니다.
고귀한 생명체가 어머니의 사랑을 깨닫고 은혜를 보답하듯이
만물을 평등하게 양육하는 우주의 어머니인 지구도
애정과 정성으로 보살펴야 합니다.
네 가지 원소로 이루어진 깨끗한 자연을
낭비하지 말고, 오염시키지 말고
사람들의 행복을 파괴하는 대신
모두에게 유익한 행동을 하는 데 열중하십시오.
나무 아래서 태어난 위대한 부처님!
나무 아래서 열망을 극복하고
나무 아래서 깨달음을 얻으셨습니다.
그리고 두 나무 아래서 열반에 드셨습니다.
부처님은 진정 나무를 깊이 존중하셨습니다.
문수 보살의 발원지인 이곳에서
쫑카파의 몸이 꽃을 피우니
십만 가지 형상의 부처님을
백단향 나무에 새겼습니다.
초월적인 신과
널리 알려진 땅의 신과 정령들이
나무에서 산다는 것은
아주 많이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울창한 나무는 바람을 정화하고
우리가 생명의 공기를 마실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눈을 즐겁게 하고 마음에 위안을 주며
그늘을 드리워 정다운 휴식처가 되어 줍니다.
율장에 따르면 부처님께서는 승려들에게
연약한 나무들을 잘 돌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나무를 심고 가꾸는
미덕을 배웁니다.
부처님은 출가자들에게 나무를 베는 것을 금했으며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살아 있는 식물을 베게 하는 행위와
씨앗을 썩히거나 싱그러운 풀을 더럽히는 행위도 금했습니다.
환경을 사랑하고 보호해야 하는 것
이것이야 말로 영감의 원천입니다!
나무는 천상의 세계에서
부처님의 축복을 발산하고
무상과 같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메아리가 되어 울려 퍼지게 합니다.
비를 부르는 나무,
흙의 정수를 간직한 나무,
소망을 들어주는 나무, 칼파 타루는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이 땅에서 살고 있습니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나무 열매를 먹고
나뭇잎으로 옷을 짓고
나무를 비벼 불을 얻었으며
위험할 때는 나무 잎사귀 사이에 몸을 숨겼습니다.
오늘날과 같은 과학과 기술의 시대에도
나무는 우리에게 쉼터를 제공합니다.
우리가 앉을 의자가 되고
우리가 누울 침대가 됩니다.
다툼으로 분노의 불길이 타오를 때도
나무는 반갑게도 시원한 바람을 선사합니다.
나무 안에서는
이 땅의 모든 생명이 아우성칩니다.
나무가 사라지면
잠부나무로 불리던 대지는
황량하고 삭막한 사막이 될 것입니다.
살아 숨쉬는 존재에게 생명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부처님은 이를 아시고 율장에서
생명체를 물처럼 사용하는 것을
금하셨습니다.
오지인 히말라야,
옛날 티베트에서는
사냥과 낚시를 금했으며
일정 기간에는 집조차 짓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전통은 고귀합니다.
약하고 힘이 없어 자신을 보호하지 못하는 생명체들을
보호하고 아끼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사냥이나 낚시처럼
살아 있는 존재를 상대로
주저함이나 망설임 없이 재미삼아 놀이를 하는 것은
부주의하고 불필요한 폭력이며
존엄한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입니다
생물과 무생물 모두
서로 의지해서 살아간다는 사실을 유념해
자연을 보존하고 보호하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됩니다.
특정한 날, 특정한 해를 정해
나무 심기를 해야 합니다
이는 우리들 책임을 이행하는 것이며
이웃들을 위하는 것입니다.
또 자신만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닌
모두를 이롭게 하는 길입니다.
옳은 것을 지키는 힘과
잘못된 관행과 악행을 금하는 그 힘으로
세상이 번영하는 데 자양분이 되게 하소서.
생명체에 활력을 불어넣어 꽃을 피우게 하소서.
숲의 기쁨과 깨끗한 행복이 커지고 퍼져 나가
만물을 감싸게 하소서.
달라이 라마께서 인도인들에게 불상을 증정하는 자리에서 발표를 한 시입니다. 또한 1993년 10월 2일 뉴델리에서 열린 <생태적 책임감: 불교를 통한 대화(Ecological Responsibility: A Dialogue With Buddhism)> 오프닝을 대신하는 헌시이기도 합니다. (<티베트 하우스>는 이 시를 티베트어와 영어로 작성해 책자로 만들었으며, 뉴델리에서 배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