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 대 달라이 라마, 텐진 갸초
2008년 올해는 세계 인권 선언이 선포된 지 6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인권 선언은 모든 인간이 결핍으로부터의 자유와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에 대한 권리가 있음을 인정하였습니다. 이러한 인간의 권리는 포괄적이고 상호 의존적인 동시에 보편적인 것입니다.
빈곤에서 비롯되는 고통, 자유의 제약, 무력 충돌, 곳곳에서 목도되는 자연 보호에 대한 태만 등은 우리가 이러한 여러 문제에 관심이 있든 없든 단편적인 일로 치부해서는 안 됩니다. 그 영향은 결국 우리 모두에게 미칩니다. 따라서 이 같은 세계적인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하나의 인류라는 관점에서, 그리고 밀접하게 서로 연결된 오늘날 세계의 본질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효과적인 국제적 행동이 필요합니다.
인간은 보호, 양육, 사랑과 친절 같은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자질을 지닌 채 태어납니다. 이같이 긍정적인 자질을 이미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것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결과 불필요한 문제들과 맞닥뜨리게 됩니다. 따라서 인간의 가치를 바로 세우는 일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과제입니다. 인간 관계를 개선하는 것에도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국적, 종교, 인종, 빈부 및 교육 수준에 관계없이 우리 모두가 똑같은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어려움에 직면하면 우리는 언제나 타인, 때로는 낯선 이의 도움을 받게 됩니다. 어려운 상황에서 사람들은 대가를 바라지 않고 서로 의지합니다. 우리는 도움의 손길을 내밀면서 상대가 누구인지 묻지 않습니다. 그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인간이기 때문에 돕는 것입니다.
빈부 격차 해소
세계는 점점 더 상호 의존적으로 변화하지만 이같이 상호 의존적인 인간 공동체가 자비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목표 선택에 있어서 그리고 협력 수단과 목표 추구 과정에 있어서 자비심이 필요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경제 주체들이 갖는 엄청난 권력과 이에 반해 빈곤이 지속되는 비참한 현실은 우리 모두가 우리의 경제를 자비심에 기초한 경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이러한 형태의 자비심은 세계 인권 선언의 내용에 구체화된 모든 인간의 존엄성과 정의에 관한 원칙과도 부합합니다.
빈곤은 어디에서나 사회 불안, 질병, 고통, 그리고 무력 충돌의 주요 원인입니다. 우리가 지금과 같은 방식을 고집한다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를 것입니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격차가 계속 벌어진다면 모든 사람에게 고통이 될 것입니다. 나와 내 가족, 내 국가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인류라는 한 가족의 일원인 다른 사람, 다른 사회에 대해서도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고통을 받는 이들에 대해 연민을 가져야 함은 물론이고 사회 정의가 실현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인권의 핵심 개념인 평등의 원칙에 충실하다면 누구든 지금과 같은 경제적 불평등을 외면할 수 없을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누구나 존엄을 지킬 권리가 있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행동으로 보여 주어야 합니다.
민주주의와 평화
오늘날에는 민주주의, 개방적인 사회, 인권 존중, 평등과 같은 가치가 전 세계에 걸쳐 보편적 가치로 인정되고 있습니다. 나는 민주적 가치가 인간이 기본적으로 선하다는 점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적인 국가에서는 국민들이 인간의 기본적인 품성을 더 잘 드러낼 수 있고, 이러한 품성이 지배적인 분위기에서는 민주주의가 더욱 강화됩니다. 더 중요한 점은 민주주의야말로 세계 평화를 담보하는 가장 효과적인 기초라는 점입니다.
하지만 평화에 대한 책임은 지도자들에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개개인 각자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내 자신이 마음의 평화를 이루면 주변 사람들과 평화롭게 지낼 수 있습니다. 내가 사는 공동체가 평화로우면 이웃한 공동체와 평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과 친절을 베풀면 그들이 그 사랑과 보살핌을 느끼는 것은 물론이고 우리 자신도 내면에 행복과 평화를 품게 됩니다. 우리는 사랑과 친절의 감정을 고양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신앙의 실천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 수 있겠고, 또 어떤 이들에게는 非신앙적인 방법도 있을 것입니다. 중요한 점은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또 우리가 사는 이 세계에 대해 책임감을 갖고 진지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입니다.
인권
인권 선언은 법적 평등과 함께 모든 인간이 어떠한 차별도 받지 않고 동등한 권리와 자유를 갖는다고 선언하였습니다. 기본적인 인권이 무시되는 경우, 평화와 자유는 보장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탄압과 억압하에서는 평화와 안정이 있을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면서 자신의 이익을 취하는 것은 정의롭지 못합니다. 진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진실을 밝히는 것을 불법화한다면 진리는 빛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진실을 감추고 거짓된 행동을 장려한다면 진리를 추구하는 우리의 이상(理想)은 어디에 머물 수 있겠습니까?
티베트의 인권 문제
다른 사람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평화롭고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점에 동의한다면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책임감을 느껴야 하지 않겠습니까?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과 기본적인 인권에 대한 존중은 유럽이나 미주에서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도 똑같이 중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에서는 종종 인권이 무시되고 표현의 자유가 억압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책임은 자유를 누리고 있는 우리에게 있습니다.
티베트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들은 철저하게 알려져야 합니다. 중국 정부는 내가 티베트에서 일어난 봉기의 배후라고 비난하고 있는데, 나는 이러한 주장에 대해 중국 대표를 포함하는 믿을 만한 기구에서 철저하게 조사할 것을 요청합니다. 동 조사 기구는 티베트 자치구와 자치구 밖에 있는 전통 티베트 지역, 그리고 이곳 인도 내 티베트 망명 정부도 방문하여 조사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제 언론 기관이 조사에 참여한다면 국제 사회, 특히 사전 검열을 거친 정보를 접하는 10억의 중국인들에게 티베트에서 정확하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알리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나는 티베트에서 자행되고 있는 인권 침해 사례가 티베트의 문화와 종교에 대한 오해와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믿습니다. 과거에도 여러 차례 언급한 바 있지만, 중국의 지도자들이 티베트의 불교문화와 문명을 보다 정확하고도 심도 있게 이해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나는 “사실에서 진리를 구하라.”라는 덩샤오핑 주석의 표현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우리 티베트인들은 중국 지배하에서 이루어진 티베트의 진보와 발전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중국 당국도 지난 50여 년간 티베트인들이 겪어야 했던 엄청난 고통과 파괴를 인정해야 합니다.
일부 경제 발전이 이루어지긴 했지만 티베트의 문화는 지속적으로 파괴되고 있으며, 소멸의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티베트 전역에서 심각한 인권 침해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보다 근본적인 문제의 표면적인 증상일 뿐입니다. 지금까지 중국 당국은 티베트의 고유한 문화와 종교에 대해 관용을 베풀고, 다원적인 태도 보이기 보다는 의심하고 통제하는 모습을 보여 왔습니다. 중국에서 추진하는 소위 티베트 ‘발전’ 계획의 대부분은 티베트를 중국 사회와 문화에 완전하게 동화시키고, 다수의 중국인을 티베트로 이주시켜 중국인이 티베트 내의 인구를 압도하게끔 고안되었습니다. 이러한 계획은 중국 정부와 공산당의 치안 방침이 중국 내에서는 커다란 진전을 보이고 있는 반면에 티베트에서는 중국 공안들이 아직도 거칠게 대응하고 있다는 점에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따라서 중국의 치밀하고 의도적인 정책의 결과로 독특한 문화와 정체성을 가진 한 나라의 전체 국민이 완전히 압도당할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불교문화의 보고일 뿐만 아니라 학문의 중심지인 티베트 불교 사원과 학승의 숫자가 크게 감소하였다는 사실은 상식입니다. 남아 있는 사원에서도 티베트 불교에 대한 깊은 연구는 더 이상 허용되지 않으며, 입학 자체도 사실상 엄격하게 규제되고 있습니다. 실질적으로 티베트에는 종교의 자유가 없습니다. 조금이라도 자유를 요구하면 분리주의자라는 낙인이 찍힐 위험이 있습니다. 티베트에는 중국 헌법에서 기본권으로 보장하는 진정한 자치권도 없습니다.
나는 티베트에서 벌어진 시위와 항의가 이러한 억압에 대한 반응이라고 믿습니다. 추가적인 억압적인 조치는 화합과 안정을 저해할 것입니다.
인권과 중국
중국은 자유롭고 역동적인 사회의 기반이 되는 인권, 민주주의, 법치가 필요합니다. 이것은 진정한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개방적이고 자유롭고 민주적인 중국은 의심의 여지없이 티베트 국민들에게도 이로울 것입니다. 나는 티베트와 중국 양국이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하고 대화한다면 당면한 문제에 대한 실질적인 해결책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중국은 세계 경제 편입에 진전을 이루었습니다. 나는 중국이 세계 민주주의의 주류에 들어서도록 촉구하는 일도 똑같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인권 보호의 개선
문화와 종교의 다양성은 모든 사회에서 기본적인 인권을 강화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다양성의 기저에는 우리 모두가 인간이라는 가족의 구성원이라는 기본적인 정신이 깔려 있습니다. 인권은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이견이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 인간으로서 공통적으로 필요한 것들과 관심사가 있습니다.
인종, 종교, 성별, 신분에 관계없이 누구나 행복을 추구하고 고통을 회피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다양성을 인정한다고 해서 인권 침해가 정당화되어서는 안 됩니다. 특정 지역에서는 전통에 따라 이민족, 여성, 하층 계급을 차별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러한 행위가 보편적인 인권 보호에 위반된다면 시정되어야 합니다.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보편적 원칙이 우선시되어야 합니다.
변화에 대한 열망이 전세계적으로 커지고 있습니다. 윤리적, 영적 가치의 재평가, 분쟁의 평화적 해결, 대화와 비폭력, 인권 보호와 인간 존엄성의 회복, 인간의 책임감 등이 그러한 것들입니다. 우리는 지구의 생태계를 보호해야 하는 긴급한 일, 모든 국가가 핵무기 및 기타 대량 살상 무기의 전면적 폐지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일, 그리고 평화, 자비, 존중 및 따뜻한 마음을 장려하는 일을 가르치고 촉진하는 변화가 필요합니다. 이러한 목표는 모두의 경각심을 높여야만 달성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관점을 넓혀 번영과 자유를 향하는 우리의 비전에 전 세계는 물론이고 미래 세대의 안녕도 포함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