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0 티베트 민족 봉기 6주년_제14 대 달라이 라마 담화문
무고한 약자인 티베트인들이 중국 제국주의자들의 압제에 항거하며 분연히 일어난 날을 또 다시 무거운 마음으로 기억합니다. 그날 이후 만 6년이 지났지만 비극의 그림자는 아직도 성스러운 땅 티베트에 망령처럼 어둡게 드리웠습니다. 탄압과 압제가 계속되고 있으며 우리 동포들이 겪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유엔 총회는 중국을 상대로 두 번이나 티베트인들에 대한 비인도적인 탄압을 중단할 것을 촉구하였습니다. 나 역시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공정하게 티베트 문제를 풀어 나가자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제 법학자 위원회(International Commission of Jurists)는 최근에 "유엔 총회의 결의안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인권의 논리에 입각한 호소마저도 중국 공산주의자들의 지배 방식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국제적으로 존경받는 다수의 저명한 법률가로 구성된 이 위원회는 또한 "자유 민권, 종교의 자유, 사회 경제적 권리를 비롯하여 '법에 의한 지배'의 근간을 이루며 세계 인권 선언(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으로도 천명된 대부분의 권리가 중국이 지배하는 티베트에서는 전혀 존중을 받지 못하고 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기본적인 생존과 자유로울 권리에 대한 명백한 탄압으로, 지금 티베트 땅에서 벌어지는 온갖 만행의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더욱 개탄스러운 것은 티베트를 통치하고 있는 중국의 권력자들은 티베트인이 감정과 정서를 지닌 같은 인류라는 사실까지 부정한다는 것입니다. 티베트인들은 지금 중국인 이주민들에게 밀려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고, 몇 안 되는 생존 수단마저 조직적으로 박탈당하고 있습니다. 중국 정부에게 티베트인의 생존 여부는 무의미합니다. 물론 중국의 지배자들은 이 모든 것을 철저하게 부인하고 있지만 이러한 비극이 엄연한 현실임을 말하는 명백한 증거들이 있습니다. 먼저, 수많은 티베트인들이 갖은 위험을 무릅쓰고 길고 험난한 여정을 마다하지 않고 인근의 다른 나라로 탈출하고 있습니다. 중국 지배 하의 삶이 견딜 만하다면 누구도 고향을 떠나 불확실한 미래에 몸을 던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두 번째로 최근에 티베트에서 일어난 사건들은 중국 정부의 주장이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일례로 북경의 중국 정부 관계 당국이 최근에 판첸 라마를 공개적으로 폄하하고 부정한 것은 비난해 마땅한 일로, 지금 티베트의 상황이 얼마나 암울한지를 방증합니다. 지금의 판첸 라마는 중국 점령지에서 태어나 중국식 교육을 받으며 자란 사람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그의 지위는 중국이 만들어 준 것입니다. 그러나 티베트인 그 누구도 판첸 라마라는 이름뿐인 지위가 중국 정복자들의 탄압과 핍박에 대한 면제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불행하게도 지금 판첸 라마는 중국에 의해 제국주의자들의 꼭두각시로 낙인 찍혀 있습니다. 인도적인 차원에서 자신들의 정책과 전략을 비판하는 모든 이를 제국주의 세력의 앞잡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중국 정부의 해묵은 관행입니다. 아무리 온건하고 공정한 비판이라도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상황이 이런 만큼 우리 티베트인들과 함께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티베트 현실을 세상 사람들이 제대로 인식할 수 있도록 일깨우고 중국 정복자들의 야만적이고 비인간적인 통치를 강력히 규탄해야 합니다. 나는 오늘 모든 티베트 동포들에게 정의에 대한 신념을 잃지 말고 평화와 자유를 되찾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할 것을 다시 한 번 굳게 다짐하기를 호소하는 바입니다. 그리고 인권 수호의 대의 명분 하에 다 같이 힘을 모아 불행과 비극으로부터 티베트를 구하자고 전 세계인에게 호소합니다.
또한 이 자리를 빌려 지금 전 인류가 얼마나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다시 한 번 강조하고자 합니다. 우호적인 관계 유지를 위한 인도 정부의 끊임없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중공군이 인도 영토를 침략하면서 그 특유의 야만성을 얼마나 적나라하게 드러냈는지를 우리 모두는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그러한 공격성은 중국이 아시아의 평화에 얼마나 위협적인 존재인가를 여실히 보여 줍니다. 단언하건대 중국이 티베트를 점령하고 있는 한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아시아 전체의 번영과 평화 유지에 대한 위협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상황의 심각성은 중국이 최근 핵 실험을 강행하면서 극에 달했습니다. 지금까지 핵을 보유한 강대국들은 핵무기 사용이 인류에 엄청난 재앙이 될 수 있음을 깨닫고 핵 확산을 막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중국 정부도 핵무기 개발에 성공하면 과연 그와 같은 노력을 할지 의문스럽습니다. 끝을 알 수 없는 무자비와 반인륜적인 야욕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정부에게 그러한 절제를 기대하기란 어렵습니다. 전 세계인이 우리 인류가 처한 현실의 위험을 직시하기를 진심으로 희망합니다.
언제나 그렇듯, 오늘도 세상 모든 존재가 행복하기를, 평화롭기를 기도합니다.
달라이 라마
1965년 3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