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0 티베트 민중 봉기 52주년_제14 대 달라이 라마 담화문
오늘은 우리 티베트 동포들이 중국 공산당 정권의 압제에 항거하여 1959년 라싸에서 평화적인 봉기를 일으킨 지 52년이 되는 것과 2008년 티베트 전역에서 발발한 비폭력 평화 시위 3주년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이 뜻깊은 날을 맞아 용감하게 분연히 일어나 티베트의 평화와 정의를 수호하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친 많은 동포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리는 바입니다. 또한 계속되는 억압 아래 여전히 고통받고 있는 많은 동포들께 무한한 지지와 동포애를 전하며 세상 모든 중생의 행복을 위해 기도합니다.
우리 티베트인들은 60년 넘게 자유를 잃고 두려움과 불안감 속에 살면서도 티베트인으로서 정체성과 문화적 가치를 굳건하게 지켜 오고 있습니다. 더욱 감사한 일은 우리의 자랑스러운 신세대들이 자유 티베트를 경험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용기 있게 티베트의 미래에 대한 책임을 넘겨받는다는 것입니다. 고난을 이겨 내는 티베트인들의 강인한 힘을 보이는 젊은 세대들에게 경의의 마음을 표하는 바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는 인간을 위해 존재하며, 중화 인민 공화국은 13억 국민들을 위해 존재하는 나라입니다. 모든 중국 국민은 자신의 나라에서 그리고 더 크게는 이 세상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사실대로 알 권리가 있습니다. 모든 사실을 숨김 없이 접할 수 있다면 국민들은 옳고 그름에 대해 더욱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보의 차단과 검열은 기본적인 인간의 존엄성마저도 부정하는 행위입니다. 하나의 예로, 중국의 정치 지도자들은 공산주의 사상과 그들의 정책이 옳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그 정책을 자신 있게 대중에게 공개하고 정당성을 검증받는 것에 주저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세계 최대 인구를 자랑하는 중국은 이제 정치적으로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세계 최강으로 급부상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이룬 놀라운 경제 발전은 갈채를 보낼 만한 것입니다. 중국은 또한 인류의 성장과 세계 평화에도 큰 기여를 할 수 있는 엄청난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제 사회의 존경과 신뢰를 먼저 얻지 못하면 그러한 잠재력을 펼치기 어려울 것입니다. 존경과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지금보다는 훨씬 더 투명하고 말과 행동이 다르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아울러, 정부 행정의 투명성 확보는 부패 방지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최근 들어 중국에서는 정치 개혁과 개방성 확대를 요구하는 지식인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원자바오 총리까지도 이러한 요구에 지지를 보내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변화이며 환영할 만한 일입니다.
중국은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언어와 문화도 매우 다채로운 나라입니다. 각 민족의 언어와 문화를 지키고 보전하는 것은 헌법에도 명시되어 있는 중국의 기본 정책입니다. 티베트어는 인도 날란다 대학(Nalanda University)으로부터 물려받은 논리와 지식 이론(인식론)에 관한 문서를 비롯해 부처님의 모든 가르침을 온전히 보존하고 있는 유일한 언어입니다. 이성과 논리에 기반을 둔 이러한 지식 체계는 세상 모든 존재의 평화와 행복에 기여할 잠재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한 문화를 지키고 발전시키기 보다는 오히려 폄하하고 훼손시키는 정책은 장기적으로 전 인류가 함께 나누어야 하는 귀중한 유산을 파괴하는 결과를 낳을 것입니다.
중국은 자주 티베트의 안정과 발전이 중국 전체의 장기적인 번영을 위한 근간이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대규모 병력을 티베트 전체에 주둔시키고 티베트 국민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티베트인들의 삶은 두려움과 불안의 연속입니다. 최근에는 티베트의 많은 지식인들과 저명 인사 그리고 환경 운동가들이 티베트인의 기본적인 열망을 공공연하게 표현했다는 이유로 처벌을 받았습니다. 실제로는 티베트인으로서의 정체성과 문화적 전통에 대한 의견을 말했을 뿐인데 “국가 권력의 와해를 획책했다.”라는 혐의로 구속된 것입니다. 그러한 억압적인 방식으로는 안정과 화합을 이룰 수 없습니다. 중국에서는 인권 변호사,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작가, 인권 운동가 등이 수시로 구속됩니다. 중국의 정치 지도자들에게 이러한 문제의 실상을 면밀히 검토하고 양심수들을 즉각 석방할 것을 강력히 요구합니다.
중국 정부는 특권층과 달라이 라마가 관계된 문제 외에는 티베트에 어떤 문제도 없다고 주장합니다. 실상은, 티베트인들이 티베트 전역에서 끊임없이 억압받고 있으며 현 정부의 정책에 깊이 분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수시로 불만을 성토하고 있습니다. 중국 정부가 티베트인을 믿지 못하고, 마찬가지로 티베트인들도 정부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티베트 내에 문제가 있음을 방증하는 것입니다. 우리 티베트 동포들은 국가 권력의 끊임없는 감시와 불신 속에 살고 있습니다. 티베트를 방문하는 외국인들과 여러 중국인들이 이 암울한 현실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에,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초반에 망명 중인 티베트인으로 구성된 대표단을 본토의 실상을 파악하기 위해 티베트로 파견했던 것처럼 같은 형식의 현지 조사단 방문을 제안하는 바입니다. 또한 제3 국의 국회의원을 비롯하여 독립된 국제 기구의 구성원으로 구성된 대표단을 티베트 현지에 파견할 것을 촉구합니다. 이 대표단에 의해 티베트에 살고 있는 티베트인들의 안녕에 문제가 없다는 결론이 난다면 기꺼이 그 사실을 인정하겠습니다.
1950년대 초 마오쩌둥 시절, 진실의 원칙에 의거하여 중국은 티베트와 17개 조항에 합의한 바 있습니다. 이와 유사한 진실의 원칙이 1980년대 초 후야오방 시절에도 한 번 더 효력을 발휘했습니다. 그러한 진실의 원칙이 법적으로 계속 유지되고 있었다면 지금의 티베트 문제를 비롯한 중국의 유사한 몇 가지 문제들도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보수주의자들에 의해 이러한 정책은 본 궤도를 벗어나고 말았습니다. 처음 발효된 후 60년이 지난 지금 진실의 원칙은 그 존폐조차도 가늠하기 힘든 문제가 되어 버렸습니다.
티베트 고원은 아시아 대륙을 흐르는 많은 강의 발원지입니다. 남극과 북극 다음으로 빙하가 가장 밀집된 지역으로, 지구상에 있는 '제3의 극'이라 불리우기도 합니다. 티베트의 환경 파괴는 아시아 대륙의 넓은 영역에 해를 끼치며, 특히 중국과 인도 아대륙에 그 영향이 큽니다. 중앙 정부와 지역 자치 정부는 물론 중국의 일반 국민들도 티베트 환경 오염의 현실을 인지하고 상황을 되돌리기 위한 지속 가능한 방법을 숙고해야 합니다. 티베트 고원의 환경 파괴로 인해 생존에 위협을 받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고통을 부디 헤아려줄 것을 중국에 당부하는 바입니다.
티베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득이 되는 '중도적 접근 방식'을 취해야 한다는, 즉 중국 내에서 티베트 민족을 위한 실질적인 자치구를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견지해 왔습니다. 중국의 통일 전선부(United Front Work Department) 간부들과 가진 회담에서도 티베트인들이 희망하는 바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이러한 합리적인 제안에 대해 아직 긍정적인 반응이 없는 것으로 보아 우리의 요구가 중국 지도부로 제대로 전달되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고대로부터 티베트인들과 중국인들은 서로 이웃하며 함께 살았습니다. 해결되지 않고 있는 지금의 입장 차이가 이러한 오랜 우호 관계에 나쁜 영향을 준다면, 그것은 분명 옳지 못한 일일 것입니다. 외국에 살고 있는 티베트인과 중국인들이 서로의 관계 증진을 위해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이 티베트와 중국이 서로를 더 잘 이해하고 우정을 쌓아가는 데 기여한다는 사실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지금 티베트 땅에 살고 있는 티베트인들도 마찬가지로 중국인들을 형제자매로 생각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최근 몇 주간 북아프리카를 비롯한 세계 여러 지역에서 주목할 만한 비폭력 투쟁이 많이 벌어졌습니다. 비폭력과 민중의 힘에 대해 굳건한 믿음을 가진 사람으로서 저는 이러한 일련의 사례들이 신념 있는 비폭력 실천 운동으로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입증해 주었다고 믿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러한 변화의 물결이 해당 국가 국민들의 진정한 자유와 행복 그리고 번영으로 이어질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저는 어린 시절부터 티베트의 정치 사회 구조를 개혁하고자 하는 희망을 품고 있었으며, 실제로 티베트에서 정치적인 힘을 가지고 있던 몇 년 안 되는 기간 동안 몇 가지 근본적인 변화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비록 티베트에서 그러한 변화를 계속 이어갈 수는 없었지만, 이곳 인도로 넘어온 이후에도 티베트의 정치 사회 구조 개혁을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현재 티베트 망명자들을 위한 헌장(Charter for Tibetans in Exile)이라는 기본 틀 내에서 정치 지도자 카론 티파(Kalon Tripa)와 민족 대표단은 선거를 통해 일반 티베트인들이 직접 뽑고 있습니다. 또한 망명지라는 특수한 환경에서도 열린 사회 구현이라는 기본 원칙 아래 민주주의 체제를 채택하여 실행하고 있습니다.
티베트인들에게는 민중이 뽑은 지도자가 필요하며 그에게 정치 권력을 기꺼이 맡길 수 있다는 점을 저는 1960년대부터 계속해서 강조해 오고 있습니다. 이제 이러한 바람을 실천에 옮길 때가 왔습니다. 오는 3월 14일에 개회하는 제14대 티베트 망명 정부 의회의 11차 회의에서 저는 정치 지도자로서의 정식 권한을 국민 투표로 선출된 지도자에게 양도한다는 의사를 반영하여 '티베트 망명자들을 위한 헌장'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표명하겠습니다.
정치 권력 이양의 뜻을 분명히 밝힌 이래로 티베트 내외에서 달라이 라마가 계속 정치 지도자를 맡아야 한다는 주장과 요청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만 정치 권력을 이양하겠다는 것이 절대 티베트 동포들에 대한 나의 책임을 회피하겠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은 장기적으로 티베트인들을 이롭게 하는 것이지 달라이 라마로서 의지가 약해졌거나 부담감에서 벗어나고자 함이 결코 아닙니다. 나를 향한 티베트 동포의 신뢰와 믿음을 잘 알고 있는 이상 티베트인의 한 사람으로서 티베트의 미래를 위해 주어진 책임을 다할 것입니다. 동포 여러분도 이런 나의 뜻을 이해하고 나의 결정을 지지하여 나의 이런 결심을 실천할 있도록 도와주리라 믿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정의에 대한 굳건한 신념을 보여 주고 있는 세계 여러 나라 지도자들과 티베트인들을 변함없이 지원하고 아껴주는 각국 의회 의원, 지식인 그리고 티베트 지원 단체 회원들께 심심한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무엇보다 티베트인들이 고유한 문화와 종교적 전통을 지키고 발전시켜 나갈 수 있도록 친절을 베풀고 지속적인 지원을 통해 망명지에서 복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데 대해 인도 국민 여러분과 인도 중앙 정부 그리고 주 정부 관계자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여러분들의 친절과 변치 않는 지지를 항상 기억하고 있습니다.
모든 중생의 안녕과 행복을 위해 기도합니다.
2011년 3월 10일
달라이 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