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0 티베트 민족 봉기 32주년_제14 대 달라이 라마 담화문
티베트를 위해 목숨을 바친 용감한 동포들과 지금도 티베트의 자유를 위해 싸우고 있는 모든 동포들을 위한 특별 기도회가 이틀 전인 3월 8일에 있었습니다. 3월 8일은 2년 전 티베트에 계엄령이 선포된 날입니다. 특히 최근 감옥에서 고문으로 사망한 청년, 락파 체링(Lhakpa Tsering)을 추모하고 사형이 임박한 것으로 알려진 롭상 텐진(Lobsang Tenzin) 등을 위해 기도합니다.
3월 8일을 추모의 날로 정하여 티베트 내에서 체포되거나 고문당하고, 처형된 모든 투사들을 비롯하여 그들과 똑같이 고통받고 있는 그 가족들의 안녕과 평화를 기렸으면 합니다. 1959년 3월 10일에 있었던 티베트 평화 시위 32주년인 오늘 우리는 이 용감한 티베트인들을 다시 한 번 떠올립니다.
티베트의 상황은 여전히 암울합니다. 지난 해 5월 1일, 중국 정부는 티베트 내 계엄령 해제를 선언하였습니다. 그러나 계엄령 해제는 그저 말뿐이라는 명확한 증거가 있습니다. 중국 인민 무장 경찰은 철수하였으나 그 대신 수천 명의 사복 경찰이 배치되었습니다. 중국이 주장하는 대로 지금 상황이 정상적이라면 즉시 모든 사복 경찰을 철수시키고 민정 당국이 라싸를 관리하도록 해야 합니다. 계엄령을 해제하기 전에 티베트의 여러 사원에서 수백 명의 비구와 비구니들이 제명되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이 중에는 가장 명석하고 불교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승려들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7월에 티베트 공산당 총서기인 장쩌민이 방문한 후로 라싸 내에서 중국 정부가 티베트 인들의 모든 활동을 정치적 행위로 간주하고 더 많은 제약을 가하고 있습니다. 중국 당국은 "엄중하고 확실한 처벌"이 "즉석에서" 가해질 것이라고 공식적으로 선언하였습니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티베트인들의 정신은 여전히 굳건하며 티베트의 자유를 위한 시위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저는 끊임없이 지속되는 티베트인에 대한 탄압과 중국인의 대규모 유입으로 우리 티베트인과 우리 문화의 생존이 위협당하고 있는 상황이 대단히 우려스럽습니다. 그 결과로 저는 1987년의 <5개항 평화 계획>과 1988년의 <스트라스부르그 제안> 등 중요한 두 가지 제안을 중국에 했습니다.
<스트라스부르그 제안>은 중국이 티베트를 통치하고 있는 현실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티베트인의 기본적인 바람에 부합할 것으로 확신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많은 티베트인이 이 제안에 실망을 했습니다. 지나치게 회유되고, 불필요한 양보가 포함되어 있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이 제안에 대하여 아직 중국 측으로부터 어떠한 공식적인 답변도 받지 못했습니다. 사실 중국 공영 방송은 이 제안에 대해 비판을 했습니다. 중국의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태도를 보면서 이 제안에 대한 개인적인 약속이 충분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고 느낍니다. 중국 지도부와 접촉하려 한 우리의 이번 노력이 실패했음을 인정하는 것이 합당한 수순일 것입니다. 가까운 시일 내에 중국 측으로부터 새로운 답변이 오지 않는다면 스트라스부르그 연설에서 제가 했던 제안에 대한 책무를 내려놓겠습니다. 그러나 티베트인의 자유와 법적 권리를 위한 노력은 언제나 변함없습니다. 또한 티베트 문제에 관하여 중국과 평화적인 해결책을 찾기 위한 협상에도 언제든 응할 것입니다.
지난 해에는 세계적으로 긍정적이고 파급력 있는 변화들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소비에트 연합에서는 보다 대의적이고 책임감 있는 정부 형태를 구성하고자 하는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정책이 세계적으로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동유럽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일당 독재 체제가 무너지고 직접 선거를 통한 정부가 구성되었습니다. 무너진 베를린 장벽과 독일 통일은 냉전 시대의 종말을 상징하며, 세계가 더 이상 동방과 서방 간의 전쟁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상태로 한 발짝 나아갔음을 뜻합니다.
몽골에서는 새로운 정부 구성을 위한 국민 투표가 있었습니다. 저는 특히 티베트와 문화 및 종교적으로 공통점을 가진 몽골에서 불교가 다시 융성하기를 바랍니다. 티베트 주변국을 보면, 다당제를 다시 부활시키려는 네팔 국민들의 노력과 이를 위해 정치 체계를 정비하기 위해 애쓰는 비젠드라(Birendra) 국왕께 찬사를 보냅니다. 애석하게도 미얀마와 같은 많은 나라에서 자유의 확대를 열망하는 국민들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이에 긍정적인 응답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세계 구도가 근본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중국 역시 더 이상 변화를 거부한 채 고립된 상태를 유지할 수 없다고 확신합니다. 민주적인 정부 형태를 통해서만 중국의 이익과 세계 평화 및 발전을 위한 창조적인 에너지를 분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언젠가 중국인들도 진정으로 깨닫게 될 것입니다. 변화의 징후는 지금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1989년 6월, 학생과 지식층이 주도한 베이징 민주화 시위를 무력으로 짓밟은 사건은 일시적인 퇴보였습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이 사건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을 지속할 수 있도록 영감을 줄 것입니다.
중국이 앞으로 평화를 유지하고 정치적 안정을 구축하려면 중국인들의 민주화 운동 성공과 더불어 수백 만에 달하는 소수 민족의 소망인 중국으로부터 독립이 달성되어야 합니다. 아시아 전체의 안정과 평화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중국을 이루고 있는 모든 구성원의 상호 이익을 위한 민주적인 국가 공동체에 합류할 수 있는 새로운 중국이 필요합니다. 중국의 식민 통치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고자 하는 티베트와 동투르키스탄, 내몽골이 이 국가 공동체에 포함될 수 있으며, 아시아 공동체를 구성하고자 하는 다른 국가까지 확대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구상을 현실화하려면 세부 사항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할 것이므로, 다른 아시아 국가의 지도자를 비롯하여 관심을 느끼는 개인과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논의하기를 바랍니다.
최근에 일어난 걸프전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에 크나큰 비통함을 느낍니다. 걸프전은 전 세계적으로 일고 있는 긍정적인 물결에서 예외적인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상황이 갑자기 파국으로 치닫는 것은 초기 단계에서 외교와 평화적 방법을 적절하게 적용하지 않고 그냥 방치한 결과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적개심을 부추기는 요소 가운데 하나는 많은 나라들이 자국에 이익이 될 것으로 보이는 힘의 균형을 이루기 위해 도입하는 "전략"이라는 것입니다.
걸프전과 같은 물리적 충돌을 부추기는 최악의 요인은 금전적 이익을 위해 개인이 국가 간의 전쟁에 개입하는 무기 거래입니다. 이러한 무기 거래는 무분별하고 무책임하며 인간을 전혀 고려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비극적인 충돌 상황을 피하고 싶다면 갈등 요소가 잠재된 상황에 바로 이 순간부터 더욱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의 이기적인 전략과 이해 관계를 변화시키고 내 주변을 넘어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책임감을 느껴야 합니다. 이로써 우리는 한 나라의 평화를 지킬 수 있을 뿐 아니라 전 세계의 영속적인 평화를 위한 초석을 다질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저는 우리 전통과 현대 사회의 요구를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새로운 정치 체계를 구축하는 순간을 고대해 왔습니다. 망명 이래 우리는 이러한 정치 체계를 발전시키려는 노력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선거를 통해 선출된 대표자들로 구성된 의회인 치투(Chithu)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이제 우리는 망명 행정부를 더욱 민주화하고 강화할 수 있는 변화의 시기를 맞이하였습니다. 이러한 변화를 통해 우리 국민이 티베트의 미래를 결정하는 데 있어 분명한 발언권을 얻기를 바랍니다.
따라서 이것은 나 개인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지난 달에 망명 티베트인들은 새로운 의회 구성을 위한 11번째 투표에 임했습니다. 앞으로 의회의 구성원이 더 충원되면 우리 행정부의 의사 결정에 있어 더욱 큰 역할을 할 것입니다. 이미 지난 5월에 열린 임시 의회에서 우리 행정부의 수장인 카샥(Kashag)이 달라이 라마의 임명이 아니라 투표를 통해 선출된 바 있습니다.
후대 티베트인들은 이러한 변화를 우리가 망명 중에 일구어 낸 가장 중요한 성과로 기억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불교가 전래되면서 우리 나라가 하나로 결속되었듯이 우리 사회의 민주화가 국민들에게 활력을 불어넣고 우리의 의사 결정 기구가 전체 티베트인들의 진정한 요구와 열망을 반영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지난 수년간, 세계 각국에서 티베트에 보내 온 정부와 민간 차원의 여러 지원에 큰 힘을 얻었습니다. 최근 몇 년에 걸쳐 미국 의회와 유럽 및 호주의 여러 국회에서 티베트와 티베트인들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는 결의안을 채택하였습니다. 지난 3월에 다람살라에서 있었던 '티베트의 친구(Friends of Tibet)' 회의는 티베트에 대한 지지가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 주는 또 하나의 고무적인 일이었습니다.
국경일인 오늘은 티베트와 티베트인 그리고 티베트 문화 유산을 한 해 동안 기리는 국제 티베트의 해(1992-1993년) 첫 날이기도 합니다. 우리 모두를 대표하여 각종 전시회, 회의, 세미나, 출판을 비롯하여 여러 방법으로 이 국제적인 교육에 헌신한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현재 티베트 망명 공동체를 지원하는 원조 단체와 개인 후원자들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자국의 여러 문제와 책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따뜻한 태도와 이해심으로 망명 티베트 행정부를 지원하고 있는 인도 정부와 인도 국민들께도 특별한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달라이 라마
1991년 3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