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0 티베트 민중 봉기 42주년_제14 대 달라이 라마 담화문
티베트가 중국에 점령당한 지 50여 년이 지났습니다. 1959년 수천 명의 티베트 인이 망명 생활을 시작한 지도 40년이 넘었습니다. 우리 역사의 가장 어두운 시기를 지나는 동안 3세대가 흘렀으며, 가혹한 고난과 고통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티베트 문제는 여전히 국제 사회에서 가장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이슈 가운데 하나입니다. 중국 정부의 인정 여부와 무관하게 국제 사회는 티베트 자치구뿐만 아니라 그 이외 티베트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심각한 문제들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1962년, 전대 판첸 라마가 베이징 정부에 제출한 70,000단어에 달하는 진정서에는 티베트 내부의 끔찍한 상황이 생생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 이후에 일부 분야에서 약간의 개선이 있었으나 근본적으로 티베트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국제 사회가 중국에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처럼 티베트 문제는 중화 인민 공화국의 안정과 통합을 저해하는 요소이기도 합니다.
중국 정부는 각종 선전을 통해 계속해서 티베트의 슬픈 현실을 가리고 있습니다. 티베트 내부의 상황이 중국 정부가 주장하는 바와 같다면 왜 외부인들이 티베트를 자유롭게 왕래하는 것을 허가하지 않는 것입니까? “국가 기밀”이라는 명목으로 모든 진실을 은폐하려고만 하지 말고 기꺼이 국제 사회에 진실을 드러내기 바랍니다. 어째서 티베트에 그토록 많은 보안 병력과 감옥이 있어야 합니까? 항상 내가 말하는 것이 있습니다. 만약 티베트 본토에 살고 있는 우리 동포들 대다수가 현재 상황에 진심으로 만족한다면 티베트 상황에 대하여 목소리를 높일 명분도 없고, 또 그럴 생각도 없습니다. 그러나 슬프게도 티베트 인들이 목소리를 낼 때마다 중국 정부는 귀기울여 듣는 대신 그들을 체포하고 구금하고 반동분자라는 딱지를 붙입니다. 티베트에 살고 있는 티베트인들은 진실을 밝힐 수 있는 기회도, 자유도 없습니다.
티베트인들이 진정으로 중국 정부에 만족하고 있다면 티베트에서 국민 투표를 실시하는 데 주저함이 없어야 합니다. 이미 많은 티베트 비정부 기구가 티베트 내 국민 투표를 주장합니다. 티베트에 있는 티베트인들이 자유 투표를 통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야말로 티베트 문제를 완전하게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비정부 기구들은 주장합니다. 그들은 티베트인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고 결정권을 가질 것을 호소합니다. 티베트인 스스로가 티베트 미래를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 오래된 내 소신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국민 투표의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나는 그 결과를 전면 지지할 것입니다.
티베트인들의 투쟁은 달라이 라마의 개인적인 지위나 안위에 관한 것이 아니라 600만 티베트인들의 자유와 기본권을 획득하고 문화를 보존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여기에는 티베트 환경을 보호하는 것도 포함됩니다. 1969년에 이미 300년 이상 지속된 달라이 라마 기구의 존속 여부는 티베트인들이 결정할 문제라고 선언하였습니다. 최근1992년에는 티베트 정치 체계의 미래에 관한 공식 발표를 통해, 우리가 일정 수준의 자유를 보장받는 상태에서 티베트로 돌아가면 달라이 라마인 나는 티베트 정부에서 어떠한 직책도 맡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미래의 티베트 정치 체계는 종교와 분리된 민주적인 형태여야 한다는 것이 오래된 나의 신념입니다. 망명지 티베트인은 물론 본토 티베트인들 역시, 과거 티베트 정치 체계로 회귀하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오래 전부터 티베트 사회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나는 생각하여 개혁을 시도하였으나 티베트에 있는 동안에는 순탄치 않은 정치 상황으로 뜻을 제대로 펼치지 못했습니다. 망명 이후, 티베트인 망명자들에게 민주주의 체계를 따를 것을 독려하였습니다. 오늘날 티베트 망명 사회는 망명 공동체로는 매우 드물게 민주주의의 세 기둥인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를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올해는 티베트 내각인 카샥(Kashag)의 의장 선출 제도가 개선되면서 민주주의 체계가 더욱 강화될 것입니다. 현재, 선거를 통해 선출된 카샥 의장과 망명 의회에게 망명 티베트 행정부의 일상적인 업무를 단계적으로 이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앞으로도 600만 티베트인을 대표하여 중국 정부와 티베트 문제를 논의해 나가는 것을 도덕적 책무로 있으며 티베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을 때까지 티베트인을 대표하는 자유로운 대변인의 역할을 할 것입니다. 티베트인들이 나에게 보내는 무한한 신뢰의 무게를 잘 알고 있습니
역사적으로 티베트(bod)와 중국(gya)의 관계는 중국 정부가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미묘합니다. 티베트는 2,000년 넘게 중국과 별도의 독립체로 존재해 왔습니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역사는 역사이며 아무도 과거의 사실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역사가와 법률 전문가들이 티베트의 역사적 지위를 인정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지나간 과거를 뒤로 하고 저는 이제 미래에 대한 기대를 품고 있습니다.
마오쩌둥과 주언라이부터 덩샤오핑과 후야오방에 이르기까지 중화 인민 공화국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온 지도자들은 ‘고유한 특성’과 ‘특별 사례’라는 표현을 통해 티베트가 갖는 지위의 특수성을 인정했습니다. 1951년에 티베트와 중국이 맺은 17개 동의안(17-Point Agreement)에는 ‘하나의 국가 내에 두 가지 체계’의 본래 정신과 개념이 담겨 있으며, 이는 티베트의 특수성을 인정한 가장 좋은 증거입니다. 중국 정부와 이러한 동의안을 체결한 지역은 중화 인민 공화국 내에서 티베트뿐입니다. 중국 정부는 티베트의 ‘고유한 특성’을 존중하기로 약속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확약과 달리 티베트에 대한 중국의 억압적인 정책 전체에서 드러나는 입장은 뿌리 깊은 불안감과 불신, 의심과 오만함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이는 티베트 고유의 문화와 역사, 티베트인의 정체성에 대한 몰이해는 물론 티베트에 대한 공감과 존중이 부족한 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사실상 현재 티베트의 가장 ‘고유한’ 특징은 중국 본토에서는 이미 오래 전에 그 영향력이 거의 사라진 극좌파적 정책이 여전히 시행되고 있는, 가장 가난하고 억압 받는 지역이라는 점입니다.
비폭력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화해 및 협력의 정신을 바탕으로 나는 오래 전부터 유혈 사태를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평화적인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나는 오랜 역사와 풍부한 문화를 간직한 중국과 중국인에 대하여 감탄을 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용기와 비전, 지혜를 갖춘다면 티베트와 중국 간에 존중과 친선을 바탕으로 상호 이익이 되는 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티베트인의 자유 투쟁에 있어 목표는 진정한 의미의 티베트 자치권을 가지는 것입니다. 나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티베트의 상황 역시 갈수록 악화되고 있지만 나는 ‘중도 노선’ 정책을 고수할 것입니다. 중도 노선에 입각하여 티베트 문제 해결책을 모색한다면 티베트인들도 만족할 수 있고 중화 인민 공화국의 안정과 결속을 다지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지난 20여 년간 중국 정부와 접촉을 하는 데 있어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가끔은 중국이 적극적인 자세를 취한 적도 있지만 소극적인 경우도 많았습니다.
지난 7월, 나의 형인 걀로 돈둡(Gyalo Thondup)이 베이징을 개인적으로 한차례 더 방문하여 나와 관련된 중국 정부의 대표적인 조직인 통일 전선부가 보낸 전갈을 받아 왔습니다. 지난 해 9월에는 뉴델리에 있는 중국 대사관을 통해 티베트 문제에 대한 내 견해를 요약한 제안서를 중국 정부에 전달하고 제안서의 주요 내용을 설명하고 논의하기 위한 티베트 대표단을 파견하겠다는 의사를 전했습니다. 이것이 티베트 문제에 대한 현실적인 해결책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계기가 되리라고 진심으로 믿었습니다. 우리가 서로에 대한 오해를 풀고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 직접 만나는 자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단 티베트 대표단이 중국 정부 측과 대면하는 자리를 만들면 큰 어려움 없이 양측이 모두 수용할 만한 해결책을 모색할 것이라는 굳은 신념을 전하였습니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아직까지 우리 대표단 방문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1979년과 1985년에 망명 티베트 행정부가 파견한 여섯 명의 대표단을 중국 정부가 받아들인 선례가 있는 데도 말입니다. 현재 중국 정부는 티베트 대표단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을 끌고 있습니다. 이는 중국 정부의 경직된 태도와 티베트 문제 해결에 대한 의지가 없는 것을 보여 주는 분명한 예입니다.
중국 정부의 강경 노선에도 불구하고 비폭력을 통해 자유와 평화를 되찾으려는 우리의 의지는 꺾이지 않습니다. 현재의 어려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우리 티베트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인내와 용기 그리고 확고한 의지입니다. 티베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중국과 티베트 모두 현실을 직시하고 진지한 논의를 통해 방법을 모색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향후 티베트와 중국 간 대화의 장은 반드시 마련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현재 티베트는 티베트인에 대한 탄압과 환경 파괴로 절망적인 상황이며 중국인이 티베트 지역으로 대거 유입되면서 티베트의 정체성과 문화가 훼손될 위험에 처했습니다. 그러나 티베트 문제는 중국 내부의 상황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강력한 힘을 지녔다고 해도 중국 역시 세계의 일부일 뿐입니다. 지금 세계적 추세는 서로에 대한 접근성과 개방성, 자유, 민주주의의 확산이며, 인권에 대한 인식이 향상되고 있습니다. 사실 중국에도 이미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중국 역시 언젠가는 진실과 정의, 자유에 대한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가장 고무적인 점은 지식인과 넓은 안목을 가진 사람들을 중심으로 티베트 문제를 올바르게 인식하고 단순한 우려를 넘어서 티베트에 대한 연대 의식을 드러내는 중국인이 늘어난다는 사실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티베트 내부의 상황은 여전히 심각합니다. 게다가 중국 정부가 티베트 문제에 대한 대화를 거부하고 있어 나의 ‘중도 노선’ 정책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정치적 이견 역시 마땅히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티베트 독립이라는 목표를 확고하게 고수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나의 태도가 분열을 초래하고 혼란을 일으킨다는 비난도 있습니다. 중국 정부가 ‘중도 노선’에 건설적인 응답을 보내지 않고 있기 때문에 나의 정책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티베트인 대부분이 티베트의 독립을 자신들의 역사적, 법적 권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 있습니다. 자유 투쟁의 수단으로 폭력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나의 확고한 입장이지만 가능한 모든 정치적 방안을 모색하고 토론하는 것이 모든 티베트인의 권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티베트 동포들을 지원하는 수많은 개인은 물론 각국 정부 관계자, 국회의원, 비정부 기구 및 종교 단체 관계자 여러분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티베트 문제를 편견 없이 바라보고 지지하는 많은 중국인에게도 고마움을 전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깊은 관용의 태도로 지난 40여 년간 우리 티베트인을 지원하고 있는 인도 정부와 국민들께 티베트 인을 대표하여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티베트 자유를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고 투쟁하는 용감한 동포들께 경의를 표합니다. 우리 티베트인의 고통이 하루 빨리 끝나기를 기원합니다. 중국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엄청난 희생을 감내하는 용감한 중국인 형제자매들께도 이 자리를 빌려 경의를 표합니다.
달라이 라마
2001년 3월 10일